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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패턴사, 신진 디자이너의 '길잡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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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02-12 15:43 조회5,38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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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류산업협회 테크니컬매니저 겸 총괄이사를 맡고 있는 홍성길 의류 제조 장인이 최근 서울 중구 을지로 동대문패션비즈센터에서 뉴스1과 가진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0.1.16/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대통령의 패턴사였다. 박근혜 대통령의 '패션 정치'는 홍성길 장인(65)의 손끝에서 탄생했다. 취임식부터 해외 순방까지 박 대통령은 그가 만든 옷을 입고 나타났다.

박 대통령이 입은 옷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많은 기자가 애 썼지만 도통 무슨 브랜드인지 알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박 대통령이 직접 디자인하고 홍 장인이 맞춤 제작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옷을 만들던 홍 장인은 이제 후배 기술자들과 젊은 디자이너들의 '길잡이'를 자처하고 있다. 인터뷰 도중에도 그에게 '무신사'에서 전화가 걸려오고 신진 디자이너들이 신년 인사를 하러 왔다.

"좋은 패턴·샘플 선생님들이 있는데도 유학만 갔다 온 디자이너들은 그걸 모르죠. 신진 디자이너들의 내비게이터, 좋은 '길잡이'가 되려고 합니다"

최근 서울 중구 동대문패션비즈센터에서 홍 장인을 만나 한국 패션 산업을 뒷받침하는 제조 기술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개성 뚜렷한 젊은 디자이너들 대거 등장…'가교' 역할하려 해"

"'블리다'의 이지은 디자이너를 대학교 졸업작품 할 때 처음 만났습니다. 해외 유학을 고민하던 그에게 제가 이렇게 이야기했죠. '유학 대신 창업을 해봐라. 내가 노하우가 있으니 개발과 생산은 책임지고 해줄 수 있다'" 홍 장인의 목소리가 들떴다.

그렇게 신생 디자이너 브랜드 블리다가 5년 전 탄생했다. 블리다는 미술 작품을 옷에 담아내는 창의적인 콘셉트로 업계에서 주목받았다. 지난해에는 아모레퍼시픽의 대표 브랜드 '설화수'와 협업한 컬렉션을 내놓기도 했다.

홍 장인은 블리다 이외에 예스25, 로켓런치, 무신사 등 다양한 젊은 브랜드를 돕고 있다. 홍 장인은 무신사에 샘플사 교육을 제공하고 무신사는 홍 장인에게 패턴을 의뢰한다. 그는 "윈윈이죠"라고 했다. 의류 제조에서 '패턴'은 평면인 원단을 입체적인 의상으로 만들기 위해 일종의 도면을 만드는 일을 뜻한다.

홍 장인은 "나름대로 노하우 가르쳐주는 게 좋다"며 "강의 나가고, 후배 양성하고 그게 맞는 것 같다. 젊은 디자이너들과 공장, 패턴·샘플 장인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젊은 디자이너들이 많이 나타났다"고 했다. 요즘 디자이너들의 특징에 대해 "옛날 디자이너들은 엔지니어들이 해주는 대로 했는데 요즘 디자이너들은 젊은 세대다 보니 자기개성과 주관이 강하다"며 "주로 1~2명이서 인터넷에서 옷을 팔더라"고 설명했다.

한때 대통령의 패션 정치를 이끌던 장인은 2014년 청와대 제2부속실을 나왔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국의류산업협회 등에서 일하며 제조 후배들과 신진 디자이너들의 길잡이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홍 장인이 현재 몸을 담고있는 한국의류산업협회 '드라마르돔'은 영세 디자이너를 지원하기 위한 곳이다. 이곳에서는 의상 교육, 촬영부터 홍 장인이 직접 진행하는 샘플·개발 상담도 받을 수 있다. 

젊은 디자이너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지만 반대로 제조 분야에서는 기술을 물려받겠다는 청년이 없어 산업 붕괴를 걱정하는 상황이다. 홍 장인은 업계의 '어른'으로서 산업의 미래를 우려했다.

"의류 임가공 기술 면에서는 우리나라 기술이 가장 뛰어납니다. 하지만 기능공 '막내'가 58세, 내일모레 환갑입니다. 배우려고 오는 젊은 교육생이 없습니다. 임가공비는 턱없이 낮고 임대료는 너무 비쌉니다. 산업적으로 위기입니다"

홍 장인은 비싼 임대료 문제를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의류 제조뿐만 아니라 영세 사업장 대부분이 겪는 어려움이다. 그는 "정부가 특화 건물을 짓고 싸게 임대하면 이탈리아처럼 장인을 육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먹고 살기위해 시작했다가 '대통령의 패션' 맡기까지

1970년 경기 이천에서 나고 자란 그는 무작정 서울 명동으로 올라와 의상실에서 의류 제조 기술을 배웠다. 왜 하필 의류 제조냐고 물으니 "먹고 살기 위해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모두가 그렇게 기술을 배우던 시절이었다. 의상실에서 잔심부름부터 시작해서 어깨 너머로 재단, 패턴 등을 배웠다. 그 시대를 풍미한 패션 중견기업들을 거쳐 1997년 디자이너 오경애 부티크에서 일할 때 박 대통령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홍성길 의류 제조 장인이 16일 오후 인터뷰 도중 공개한 의상 디자인(왼쪽)과 박근혜 대통령이 입은 의상 사진(오른쪽). 홍 장인은 왼쪽 디자인을 "박근혜 대통령 직접 그려서 준 것"이라고 말했다. 2020.1.16/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1997년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에 입당할 때부터 그의 의상 패턴 작업을 맡아 초선 국회의원부터 대통령을 지낼 때도 그와 함께했다. 때때로 박 대통령은 직접 원하는 옷 디자인을 그려 홍 장인에게 전달했다. 원단도 박 대통령이 직접 골랐다.

패션은 정치에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정치인은 자신의 패션을 통해 이미지를 구축하고 카리스마를 보여준다. 그는 박 대통령이 "차이나 칼라 등 소위 '간지'가 있는 디자인과 원색 계열 색상을 선호했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공식 석상, 외교 일정에서 입을 옷을 만드는 것. 실력을 증명한 장인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에게 장인의 수준에 도달할 수 있었던 비결을 물으니 원론적이면서도 다소 시시한 답이 돌아왔다.

"저는 집중력이 강하고 성취욕이 있었습니다. 남들보다 빨리 설명을 알아들었고 영업 마인드가 있어서 어떤 고객과도 잘 소통했죠. 다양한 패션 책을 보면서 공부도 끊임없이 했습니다" 홍 장인은 패션 서적이 가득한 자신의 책장을 가리켰다.

홍 장인은 우연히 패션을 시작했으나 일평생 '패션 외길'을 걸었다. 패션 제조 산업이 쇠퇴 중인 지금도 자를 놓지 않고 있으며 후배 양성에 앞장선다. 그를 통해 오늘날 장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hemingway@news1.kr


[출처]http://news1.kr/articles/?3825963